순결과 정절

2024. 3. 18. 14:50심리학

포유동물의 암컷은 보통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발정기에 들어간다. 발정기가 되면 종종 생생한 시각적 단서나 후각적 단서로 수컷들을 강하게 유혹한다. 성관계는 주로 이 짧은 기간에만 일어난다. 반면에 사람 여성은 배란할 때 절대로 생식기를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며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남성이 포착할 수 있는 후각적 단서를 낸다는 증거도 없다. 기실 영장류로서는 매우 드물게 사람 여성에서는 배란이 은밀하게 혹은 숨겨진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여성의 배란 은폐는 여성의 번식 상태를 다른 이들이 알 수 없게 막는다. 배란 은폐는 인간 짝짓기의 기본 틀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배란이 실제로 이루어질 때뿐만 아니라 배란 주기 전체에 걸쳐서 남성들이 여성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배란 은폐는 부성의 확실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심각한 적응적 문제를 안겨 주었다. 어느 영장류 수컷이 짧은 발정기 동안만 암컷을 독점했다고 가정해 보자. 인간 남성과 달리 그 수컷은 자신의 부성을 굳게 확신할 수 있다. 그가 암컷과 교미하고 다른 수컷으로부터 암컷을 지켜야만 하는 시기는 엄청나게 제한되어 있다. 암컷이 발정기가 아닌 때에는 수컷은 부성이 침해당할 걱정 없이 다른 일을 보러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 남성들은 이러한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그들은 여성이 언제 배란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짝짓기 외에도 많았기 때문에 여성을 24시간 내내 감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내를 감시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쓸수록 다른 중대한 적응적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낼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조상 남성들에겐 다른 영장류 수컷들에겐 주어지지 않은 독특한 과제를 줬다. 배란이 은폐된 상황에서 어떻게 나의 부성을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결혼은 그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된다. 결혼한 남성은 자신의 부성에 대한 확실성을 많이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남성들보다 번식적으로 크게 이득을 본다. 배란 주기 전체에 걸쳐 꾸준히 성관계를 맺는 전략은 여성이 남편의 아이를 가질 가능성을 월등히 높여 준다. 또한 일종의 사회적 전통인 결혼은 두 남녀를 공개적으로 묶어 주는 역할도 한다. 두 당사자만 아니라 양가 친척들도 정절을 강요한다. 결혼은 배우자의 인성에 대해 상세히 알 기회도 제공하므로, 아내가 자신이 부정을 쉽게 저지를 여자라는 것을 숨기게 어렵게 만든다. 적어도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조상 남성들이 결혼함으로써 얻는 이러한 이득들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얻을 수 있는 성적인 기회들을 포기하는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떤 조상 남성이 결혼이 주는 번식적 이점을 누리려면 그의 아내가 정말로 오직 그에게만 정절을 지킬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이 있어야 했다. 정조를 암시해 주는 단서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남성들은 배우자를 찾고, 구애하고,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데 시간과 자원을 고스란히 낭비할 우려가 컸으며 결국 번식 성공도의 측면에서 상당부분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단서들에 둔감하면 애써 얻은 아내의 부모 투자(parental investment)를 다른 남자의 자식들을 기르는 데 써 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번식이라는 관점에서 더욱더 뼈아픈 손실은 부성을 확보하지 못해서 남성의 귀중한 부모 투자가 다른 남자의 자식에게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 관계를 갖는지 마는지 무신경했던 조상 남성은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후세에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 남성들은 남성에게만 부과된 이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아이들의 유전적 아버지라는 부성을 높여 줄 수 있는 자질을 지닌 배우자를 선택했다. 배우자에 최소한 두 가지 선호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 것이다. 혼전 순결에 대한 욕망과 결혼 후의 성적 충실에 대한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의 피임 기구가 쓰이기 전에는 신붓감의 혼전 순결이 장래에 부성이 확실히 보장될 것임을 알려 주는 단서가 되었다. 여성이 순결을 지키는 경향이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가정이 합당하다면, 혼전 순결은 결혼 후에도 그녀가 정절을 지킬 것임을 알려 준다. 순결한 신부를 얻지 못한 남성은 후에 오쟁이를 질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현대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이 신랑의 순결을 중시하는 것보다 더 크게 신부의 순결을 중시한다. 미국 내에서 세대를 거쳐 실시된 한 짝짓기 연구는 남성들이 여성보다 장래 배우자의 순결을 더 중시함을 발견했다. 그러나 남성들이 신부의 순결에 두는 가치는 지난 5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 시기에 산아 제한이 점점 더 많이 행해졌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감소 추세는 산아 제한이라는 문화적 변화로부터 초래된 것 같다. 1930년대에는 남성들이 순결을 거의 필수 불가결한 자질로 간주했지만, 지난 20년 동안에는 바람직하지만 꼭 필요하진 않은 자질로 평가했다. 조사된 18개 자질 가운데 신부의 순결은 1939년에는 10번째로 중요하게 평가되었지만 1980년대에는 17번째로 평가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 남성이 순결을 똑같이 중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예컨대 텍사스의 대학생들은 캘리포니아의 대학생들보다 신부의 순결을 더 중시했다. 3.00 척도상에서 전자의 대학생들은 순결에 1.13의 점수를 매겼으며 이는 후자의 대학생들이 매긴 0.73보다 높았다. 20세기 들어 순결에 부여하는 가치가 계속 하락했고 지역적인 차이도 관찰되긴 했지만, 성차는 여전히 존재했다. 장기적으로 서로 헌신하는 배우자를 구할 때 남성들은 여성보다 상대의 순결을 더 강조한다.

 

남성들이 여성보다 순결을 중시하는 경향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지만, 순결 그 자체에 두는 중요성의 정도는 문화마다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한쪽 끝의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대만, 그리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내 아랍 지구 사람들의 경우, 장래 배우자의 순결을 매우 중시한다. 다른 쪽 끝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경우, 여성의 처녀성은 아내를 고르는 데 거의 상관이 없거나 중요하지 않은 자질로 여긴다.

젊음과 신체적 매력에 대한 배우자 선호에서 전 세계적으로 성차가 일관되게 존재하는 반면에 배우자 선택에 대한 국제 연구가 조사한 문화권들 가운데 단 62퍼센트에서만 장기적인 배우자의 순결에 부여하는 중요성에서 성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순결의 중요성에 대한 성차가 존재하는 문화권에서는 남성이 언제나 예외 없이 여성보다 배우자의 순결을 더 중시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순결을 중시한 문화는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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